창의적인 게임을 보기가 참 어렵다. 게임마다 크리에이터의 '스타일'이 살아 있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원인을 한 번 생각해 봤다.

 

1. 장르의 관습

 

게임 산업의 역사가 어느새 꽤 길어졌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게임들이 나오고 도태되고를 반복하면서 장르화가 진행되었고, '장르의 관습'이라는 것이 생겼다. (장르게임에 대한 생각은 예전 포스트를 참고하시라.) 대부분은 장르의 관습을 따르는 게임이 만들기도 쉽고, 유저들에게 접근하기도 쉽다. 현재 개발되는 절대다수의 게임은 특정 장르를 따르거나, 비틀거나, 덧붙이거나, 혼합하는 접근일 뿐, 장르의 공식을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2. 거대화

 

게임은 더 이상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그보다는 '돈 놓고 돈 먹기'에 더욱 가깝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개발비, 개발인원 자체가 너무나 커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실패했을 경우의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 그건 결국 만드는 입장에서 '안정성'을 중요시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3. 팀작업이 가지는 한계

 

2번과 연계되는 것인데, 개발팀이 거대화될 수록 '개인의 취향'은 퇴색되기 쉽다. 50명이 붙어서 조각을 깎았을 때 그것이 개성 있는 조각품보다는, 보편적인 미적 관점에만 부합하는 결과물을 낳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은 게임을 혼자 만들지 않는다.'개인 작업'이 아닌 '팀 작업'이라는 것이 게임이 창의적이기 힘든 가장 큰 족쇄 중 하나이다.
개인이 만드는 소설, 미술, 음악의 경우 등에 비해 '개인의 취향'이 들어가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정말 암울한 것은 여러 사람의 취향을 다 맞추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상업주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걸 극복한 거의 유일한 사례가 영화산업인데, 이는 다시 4번으로 연결된다.
 
4. PD에 대한 신뢰 부족

 

어느 회사의 경영자도 "김PD, 자네를 믿으니까 자네 만들고 싶은 거 마음껏 만들게나. 완성될 때까지 절대로 터치하지 않겠네."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느 개발팀의 팀원도 "김PD님, 어떤 걸 만드시더라도 무조건 믿고 힘을 보태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게임PD는 자신이 만들고 싶어하는 게임을 만들면 되는 속 편한 위치가 아니다.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음을 경영자와 개발팀원들에게 끊임없이 설득시켜야 하는 피곤한 위치이다.
기존에 없던 게임을 만드는 경우와, 게임성이 검증된 기존 게임을 사례로 들 수 있는 경우 중 어느 쪽이 설득시킬 때 유리한가? 당연히 전자는 뜬구름 잡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고, 후자는 경영자와 개발팀원 모두가 '체험'하며 납득할 수 있다.
리니지 이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대부분의 온라인게임들은 기존에 패키지 형태로 존재하던 게임의 게임성을 거의 그대로 온라인으로 가져온 게임들이다.
감독이 절대적인 신뢰와 권한을 가지고, 감독의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영화산업이 부러운 이유가 이것이고, 그래서 나는 게임이 영화를 닮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5. 월급쟁이 개발자

 

대부분의 게임 개발자는 '회사원'이다. 회사원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노력해야 하며, 무엇보다 회사의 수익을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다.
회사원이 자신의 창작욕때문에 부담스러운 모험을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회사원이 회사가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도록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크리에이터로서의 욕심과 회사의 이익이 충돌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 때 회사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절대 비난받을 것이 아닌 정당한 행위이다.

 

6. 게임이 서비스라는 인식

 

온라인게임 위주의 국내 시장에서 어느새 "게임은 서비스다."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졌다. 서비스라는 말의 전제는 '고객은 언제나 옳다.'이다. 즉, 게임에 유저의 요구가 반영된다는 것이고, 이것은 업데이트라는 방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개발팀의 지향점을 우선시 하는 개발팀과 유저의 요구를 우선시하는 운영팀 사이의 갈등(내지는 파워게임)은 대부분의 온라인 개발사에 존재할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관점에서 얘기되는 게임의 '완성도'는 유저의 요구 중 적당한 것을 수용하며 계속 가꿔나갈수록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완성도가 낮아 보이는 부분 또한, 만든이의 취향이 묻어나오는 부분이라는 것이 문제다.
상상해 보라. 피카소가 그린 입체파 그림을 보고 "이게 어떻게 사람이냐? 좀 더 사람답게 만들어라."라고 하는데 피카소가 "예, 알겠습니다."라고하며 평범한 그림으로 고쳐나가는 장면과, 예술 영화를 보다가  "이 장면 이해가 안되네? 영화가 친절해야지! 좀 쉽게 연출 바꿔 봐."라고 하면 그걸 헐리웃 영화 연출처럼 바꿔 버리는 장면을.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이 게임에서는 가능하다.